오늘날 시가총액이 수천조 원을 넘나들며 전 세계 IT 산업과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배하는 거대 공룡 기업 애플(Apple).
우리는 흔히 애플의 창업자로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천재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두 사람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1976년 차고지에서 애플 컴퓨터가 처음 탄생하던 결정적인 순간, 세 번째 공동 창업자가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그의 이름은 론 웨인(Ronald Wayne). 만약 그가 당시 자신이 가졌던 애플 지분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면, 오늘날 그는 자산 수백조 원을 가진 세계 최고 부호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단 돈 800달러(약 100만 원)에 자신의 지분을 팔아치우고 애플을 걸어 나온 그의 눈물겨운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두 철부지 천재 사이의 '어른' 역할]
1976년 당시, 스티브 잡스는 21세, 스티브 워즈니악은 25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었습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었지만, 비즈니스 경험이 전혀 없고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던 두 사람은 수시로 격렬한 의견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두 사람의 중재자로 나선 인물이 바로 같은 전자 회사(아타리)에서 근무하던 41세의 베테랑 엔지니어 론 웨인이었습니다. 인생 단단히 단련된 베테랑이었던 웨인은 두 철부지 천재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웨인의 탁월한 행정 능력과 경험을 높이 샀고, 그에게 신생 회사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립자로 합류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1976년 4월 1일, 세 사람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지분을 다음과 같이 나누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지분 45% (아이디어 및 마케팅)
스티브 워즈니악: 지분 45% (기술 개발 및 제품 제작)
론 웨인: 지분 10% (회사 설립 절차, 계약서 작성, 제품 매뉴얼 및 초기 애플 로고 디자인)
론 웨인은 애플의 첫 번째 공식 로고(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뉴턴의 모습)를 직접 그렸고, 애플의 첫 파트너십 계약서까지 완벽하게 작성해 내며 회사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12일 만에 지분을 포기한 이유: '무한 책임'의 공포]
하지만 계약서의 인쇄가 채 마르기도 전인 불과 12일 만에, 론 웨인은 자신의 지분 10%를 모두 포기하고 애플을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겁먹게 만들었을까요?
원인은 당시 애플의 법적 사업 형태였던 '동업(Partnership)' 구조에 있었습니다.
동업 형태에서는 회사가 채무를 지거나 파산할 경우, 동업자 전원이 개인 자산으로 빚을 메워야 하는 '무한 개인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문제는 두 스티브와 론 웨인의 자산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는 점입니다.
두 스티브: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잃을 재산도 돈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론 웨인: 40대의 가정을 가진 가장이었고, 집과 개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과거 자신이 시작했던 수공예 사업이 파산해 빚을 갚느라 피눈물을 흘렸던Trauma(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I 컴퓨터 부품을 사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15,000달러라는 거액의 사채성 대출을 끌어쓰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잡스의 사업이 실패하거나 부품 대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채권자들은 돈이 없는 두 스티브 대신 유일하게 집과 재산이 있는 론 웨인의 개인 자산을 압류할 것이 불 보듯 비디오였습니다.
결국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론 웨인은 잡스를 찾아가 지분 10%를 포기할 테니 동업 관계를 해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잡스는 그에게 지분 포기 대가로 단 돈 800달러를 지불했습니다. (이후 법적 권리를 완벽히 포기하는 조건으로 1,500달러를 추가로 받아 총 2,300달러를 받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800달러의 후회?]
론 웨인이 애플을 떠난 직후, 애플은 무서운 기세로 투자금을 유치하며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폭풍 성장했습니다.
만약 론 웨인이 그 불안감을 12일만 참고 애플에 남아 자신의 지분 10%를 유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날 애플의 시가총액을 감안할 때, 그가 포기한 지분 10%의 가치는 시기에 따라 수백조 원(1,000억 달러 이상)에 달합니다. 세계 최고 부호 순위 Top 10에 무난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습니다.
비참하게도 그의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생활고에 시달리던 론 웨인은 장롱 속에 보관해 두었던 1976년 애플 설립 당시의 친필 동업 계약서 원본을 단 돈 500달러에 중고 서적상에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계약서는 뉴욕 경매장에서 무려 159만 달러(약 20억 원)에 낙찰되어 그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당시의 제 최선이었습니다"]
오늘날 은퇴 후 네바다주의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우표와 동전을 수집하며 살아가고 있는 론 웨인에게, 수많은 취재진이 찾아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기분이 어떠냐"고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늙은 론 웨인은 담담하고 침착하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후회하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당시 애플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무모한 스티브 잡스의 추진력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겁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시체가 되는 대신, 소박하지만 내 삶의 평온을 얻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와 상황에서 내린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었기에, 저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부와 대성공의 그늘 뒤에 숨겨진 론 웨인의 비하인드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리스크와 기회, 그리고 인간의 삶과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비화로 남아있습니다.
핵심 요약
론 웨인은 1976년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립하고 회사 기틀과 첫 로고를 만든 세 번째 창업자(지분 10%)였습니다.
잡스의 무모한 자금 조달과 동업자의 '무한 개인 채무 책임'에 두려움을 느껴 창립 12일 만에 지분을 단 돈 800달러에 팔고 탈퇴했습니다.
그가 포기한 지분 10%는 오늘날 수백조 원의 가치를 지니며, 후일 500달러에 판 계약서 원본마저 159만 달러에 경매되는 등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12편에서는 모두가 망할 것이라 손가락질했던 위험천만한 도전, ‘아마존 제프 베조스가 '무료 배송'을 처음 도입했을 때 주변에서 미쳤다고 한 이유’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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