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블랙 먼데이(1987)와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의 충격적인 공포

  "컴퓨터가 시장을 끄기 전까지는, 아무도 매도를 멈출 수 없었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 월스트리트는 전쟁터보다 더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특별한 전쟁이나 초대형 정치적 스캔들도 없던 평범한 가을날, 단 하루 만에 다우존스 지수가 22.6%나 수직 폭락한 것입니다.

이날은 금융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하루로 기록된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입니다. 내가 주식 시장의 시스템 폭락사를 탐구하면서 가장 섬뜩하게 느꼈던 대목은, 사람들의 단순한 공포심을 넘어 ‘인간이 만든 컴퓨터 알고리즘과 자동화 시스템’이 스스로 폭락을 증폭시켜 시장을 삼켜버린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39년 전 그날 월스트리트의 컴퓨터 모니터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신기술의 유행: 포트폴리오 보험과 프로그램 매매]

1980년대 중반, 월스트리트에는 첨단 금융 공학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컴퓨터 전산망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명문대 출신의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대거 금융가로 유입되어 복잡한 프로그램 매매 알고리즘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거대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유행하던 주식 방어 기법이 바로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이었습니다. 개념은 매우 단순하고 완벽해 보였습니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컴퓨터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주식 선물(Futures)을 매도하여 손실을 방지한다."

기관들은 주가가 내려가더라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아서 손실을 막아줄 것이라 과신했습니다. 그러나 이 완벽해 보이던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시장에 참여한 거의 모든 거대 기관이 똑같은 '자동 매도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깔아두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987년 10월 19일: 컴퓨터들의 연쇄 폭주]

10월 19일 월요일 개장 직후, 미·독 간의 금리 갈등과 무역 적자 우려로 주가가 소폭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소의 일반적인 시장 조정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미리 설정해 둔 하한선에 도달하자, 컴퓨터들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 1차 매도 폭주: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대규모 주식 선물 매도 주문을 시장에 쏟아냈습니다.

  2. 현·선물 격차 발생: 선물이 폭락하면서 현물 주가지수와의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3. 2차 차익거래 프로그램 작동: 이 격차를 감지한 다른 컴퓨터 알고리즘들이 현물 주식을 기계적으로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가 매도 주문을 내서 주가가 떨어지면, 그 하락을 감지한 또 다른 컴퓨터의 포트폴리오 보험 알고리즘이 더 큰 매도 주문을 넣는 '악순환의 무한 루프'가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의 전산 처리 능력은 수천만 주의 매도 물량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브로커들은 자신이 내린 주문이 얼마에 체결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태'에서 전화기를 들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인간이 제어판의 스위치를 내릴 새도 없이, 컴퓨터 알고리즘은 1000분의 1초 단위로 공포를 확산시키며 주가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루 만에 22.6% 폭락, 그리고 서킷브레이커의 탄생]

장의 마감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다우존스 지수는 하루 만에 508포인트(22.61%)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1929년 대공황 당시의 일일 최대 폭락 수치(12.8%)를 가볍게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대폭락이었습니다.

단 하루 만에 미국 전체 국부에 해당하는 수천억 달러가 공중으로 사라졌고, 전 세계 주요 거래소(런던, 도쿄, 홍콩)도 연쇄 폭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금융 당국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비이성적인 시스템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블랙 먼데이 사건을 계기로 주가가 일정 비율 이상 급락하면 전산 매매와 시장 거래를 강제로 일시 정지시키는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와 '사이드카(Sidecar)' 제도가 세계 주요 증권거래소에 전격 도입되었습니다. 폭주하는 컴퓨터와 사람들의 광기에 '냉각 시간'을 주어 이성을 되찾게 하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습니다.

[블랙 먼데이가 남긴 시스템적 교훈]

블랙 먼데이는 기술과 금융이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약점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입니다.

  1. 완벽한 알고리즘의 환상: "컴퓨터가 내 손실을 완벽히 막아줄 것"이라는 착각이 오히려 시장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었습니다.

  2. 동일한 전략의 위험성: 모두가 같은 순간에 똑같은 문(매도)으로 나가려고 할 때, 시장의 유동성은 순식간에 고갈되어 문이 막혀버립니다.

오늘날의 주식 시장은 1987년보다 훨씬 정교한 AI와 초단타 매매(HFT) 알고리즘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시스템의 한순간 오류나 쏠림으로 발생하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컴퓨터 기술이라 할지라도, 결국 위험 관리의 마지막 책임은 기술을 다루는 인간에게 있다는 진리를 1987년의 검은 월요일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핵심 요약

  1.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 당시 미국 다우 지수는 단 하루 만에 22.61%라는 역대 최대 폭락을 기록했습니다.

  2. 주가 하락 시 기계적으로 선물을 매도하는 '포트폴리오 보험' 알고리즘과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가 연쇄 반응을 일으켜 폭락을 극대화했습니다.

  3. 이 사건을 계기로 시장의 비이성적 폭수를 막고 냉각 시간을 벌어주는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전 세계 증권거래소에 공식 도입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런던 금융가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독특한 정치적·금융적 지위와 수백 년 이어져 온 전통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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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 매매나 코인/주식의 자동 매매 프로그램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컴퓨터 알고리즘 매매를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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