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편] 도쿄 증권거래소의 잃어버린 30년: 버블 경제 피크 시절의 기이한 풍경들
오늘날 일본 경제를 이야기할 때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도쿄 증권거래소와 일본 자산 시장이 전 세계를 집어삼킬 듯이 팽창했던 '버블 경제(Bubble Economy)'의 최고점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기이하고도 화려한 광경들이 펼쳐졌습니다.
내가 금융사의 폭락 및 버블 단계를 탐구하면서 가장 기이하게 느꼈던 대목이 바로 이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모습입니다. "일본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부동산과 주가는 영원히 오른다"는 집단적 과신이 만든 그 시절 도쿄 금융가의 풍경은 자산 버블이 인간의 이성을 어디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황궁 부지 하나로 미국 칼리포니아 전체를 산다?]
1989년 12월, 도쿄 증권거래소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 225 지수는 역사상 최고치인 38,915.87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도쿄 증권거래소 한 곳의 시가총액이 전 세계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무려 45%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자산 가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품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비유들이 있습니다.
도쿄 황궁 토지의 기적: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일왕의 거처(황궁) 부지 하나의 평가액이 미국 칼리포니아주 전체 땅값과 맞먹는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도쿄 23구 vs 미국 전체: 도쿄 23구의 땅을 모두 팔면 미국 대륙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는 산술적 계산이 유행했습니다.
미국 상징의 매입: 일본 자본은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뉴욕의 로크펠러 센터, 캘리포니아의 펠블비치 골프장, 그리고 영화사 컬럼비아 파처스 등을 무차별적으로 매수했습니다.
주식 시장 역시 정상적인 기업 가치 평가(Valuation)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당기순이익 대비 주가를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평균 60~70배를 넘어섰고, 일부 우량주는 PER 100배 이상에서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택시 잡으려 만 원짜리 지폐를 흔들던 도쿄의 밤]
자산 가격의 폭등은 일상생활의 풍경마저 기이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도쿄의 금융가인 긴자와 니혼바시 거리에서는 밤마다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당시 심야에 택시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1만 엔짜리 지폐(현재 가치로 수십만 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흔들며 "택시!"를 외쳤습니다. 팁으로 1만 엔을 선불로 주지 않으면 택시조차 탈 수 없을 정도로 현금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기업에 면접만 보러 가도 교통비 명목으로 수십만 원의 현금을 봉투로 받았습니다.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 다른 회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합격 통보를 한 뒤 며칠 동안 해외여행을 보내주며 격리시키기도 했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번 돈이 사회 전체에 쏟아져 들어오며 만든 일시적인 착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금리 인상과 시작된 30년의 냉각기]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화려한 잔치도 금리라는 단 하나의 열쇠로 인해 순식간에 끝이 났습니다.
1989년 말, 부동산과 주가 폭등으로 인한 물가 자극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일본중앙은행(BOJ)의 미에노 야스시 총재가 과감한 기준금리 인상(1989년 2.5%에서 1990년 6.0%까지 급상승)을 단행했습니다. 이와 함께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가 시행되면서 자금의 수도꼭지가 갑자기 잠겼습니다.
시장에 흐르던 돈줄이 끊어지자, 1990년 새해 첫 거래일부터 도쿄 증권거래소는 대폭락을 시작했습니다.
닛케이 지수의 수직 하락: 1989년 12월 38,900선이었던 지수는 불과 2년여 만인 1992년 14,000선까지 토막 났습니다.
부동산의 연쇄 폭락: 주가 폭락에 이어 부동산 가격이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을 샀던 개인과 기업, 은행들이 연쇄 파산했습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었고, 기업들은 설비 투자와 채용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을 수십 년간 수렁에 빠뜨린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었습니다.
[도쿄 버블이 던지는 역사적 메시지]
1980년대 도쿄의 버블 경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의 추억이 아닙니다. 자산 시장이 실체적 경제 성장이나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이 아닌, '중앙은행의 과도한 유동성 공급'과 '가격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집단적 믿음'으로만 지탱될 때 그 끝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증명해 준 사건입니다.
폭락이 찾아오기 직전까지도 시장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버블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방식은 다르다", "뉴노멀이다"라는 말로 비이성적인 자산 가격을 정당화했습니다.
도쿄 증권거래소의 잃어버린 30년은 오늘날 현대 투자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를 던집니다. 모두가 환호하고 지폐를 흔들며 광기에 젖어 있을 때야말로, 가치와 실체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핵심 요약
1980년대 후반 도쿄 버블 경제 당시, 도쿄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은 전 세계 주식시장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기이하게 팽창했습니다.
도쿄 황궁 부지 평가액이 미국 칼리포니아 전체 땅값과 맞먹고, 주가수익비율(PER)이 60~100배에 달하는 등 비이성적 가치 평가가 만연했습니다.
1989년 말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와 부동산이 폭락했고, 이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컴퓨터 자동 매매 시스템의 보급과 함께 찾아온 최초의 시스템적 공포, ‘블랙 먼데이(1987)와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의 충격적인 공포’를 다룹니다.
함께 생각해볼 댓글 질문
만약 여러분이 1989년 도쿄 한복판에서 모두가 부동산과 주식을 살 때 혼자서 "이것은 거품이다"라고 외치며 시장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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