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통 역사와 주식시장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단 하나의 품귀 대란을 꼽으라면 단연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입니다.
2014년 출시 직후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며 중고나라에서 깡통이 거래되고, 대형마트마다 "오늘 허니버터칩 입고 안 됨" 안내문이 붙었던 신드롬. 하지만 그 열풍을 믿고 150억 원을 들여 공장을 증설한 순간, 거짓말처럼 유행이 식어버렸습니다.
단순한 과자 하나가 어떻게 주가 폭등과 주주들의 피눈물, 그리고 설비투자(CAPEX) 실패라는 거대한 교훈으로 남게 되었는지 그 비하인드와 주식시장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봅니다.
[감자칩은 짜다? 관성을 깬 과자 하나가 만든 대란]
2014년 8월, 해태제과가 출시한 허니버터칩은 기존 감자칩의 상식을 완전히 깨부쉈습니다. "감자칩은 짭짤해야 한다"는 수십 년간의 공식을 깨고 아카시아 꿀과 프랑스산 버터를 조합해 '달콤하고 고소한 감자칩'을 선보인 것입니다.
SNS를 타고 입소문이 퍼지자 사태는 순식간에 제어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희귀템 신드롬: 대형마트와 편의점 문이 열리자마자 품절되었고, 점주들은 허니버터칩을 인기가 없는 다른 과자 여러 개와 묶어 파는 '인질 극 판매'를 벌였습니다.
웃돈 거래: 소비자 가격 1,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5,000원에서 1만 원에 거래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해태제과 모기업 주가 폭등: 당시 상장되어 있던 모기업 크라운제과의 주가는 허니버터칩 대란을 타고 단기간에 수배 이상 폭등하며 주식시장의 최고 화제주로 떠올랐습니다.
[경영진의 딜레마: 공장을 늘릴 것인가, 말 것인가?]
수요가 폭발하자 마트와 편의점, 소비자들은 해태제과를 향해 "왜 물량을 안 풀어내냐", "일부러 안 만드는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며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해태제과 경영진과 투자자들에게는 남모를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꼬꼬면의 망령'이었습니다.
몇 년 전 찌개 라면 시장을 뒤흔들었던 라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라면 회사가 막대한 돈을 들여 공장 생산 라인을 증설했는데, 증설이 끝나자마자 입맛이 바뀐 소비자들이 떠나가면서 막대한 고정비 부담을 안게 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자 생산 라인을 하나 증설하는 데는 최소 150억 원 이상의 거액이 들어가고, 완공까지 1년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만약 공장을 짓는 사이에 유행이 꺼져버리면 새로 지은 공장은 그대로 회사의 재무 구조를 옥죄는 '돈 먹는 하마'가 됩니다.
[150억 원의 결단, 그리고 시작된 '피크 아웃(Peak-out)']
1년 넘게 쏟아지는 품귀 현상과 소비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결국 경영진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2015년 초, 해태제과는 일본 칼비(Calbee)사와 합작하여 150억 원을 투입해 문막 2공장을 증설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에 주식시장은 환호했고, 해태제과식품은 성공적으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IPO)하며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2016년 5월, 150억 원짜리 신규 공장이 완공되어 24시간 풀가동을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주식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현상인 '피크 아웃(Peak-out: 실적 정점 후 하락)'이 찾아왔습니다.
수요의 착시 현상: 허니버터칩이 잘 팔렸던 진짜 이유 중 하나는 '구하기 힘들다'는 희소성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소비자의 호기심은 급격히 식었습니다.
미투(Me-too) 상품 폭주: 공장이 지어지는 1년 동안 경쟁사들이 허니통통,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등 수십 가지의 달콤한 감자칩 복제품을 시장에 쏟아냈습니다.
실적과 주가의 꺾임: 신규 공장이 돌기 시작하자마자 매대에는 재고가 쌓였고, 매출 성장세는 꺾였습니다. 신규 공장 가동에 따른 감가상각비와 고정비 부담은 그대로 회사의 영업이익을 갉아먹었습니다.
결국 상장 초기 6만 원을 위협하며 폭등했던 해태제과식품의 주가는 실적 감소와 함께 오랜 기간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투자자들에게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주식 시장이 주는 명확한 교훈: 설비투자(CAPEX)의 함정]
허니버터칩 대란과 공장 증설 잔혹사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업 분석의 핵심 레슨을 제공합니다.
'희소성에 의한 매출'과 '지속 가능한 매출'을 구분하라: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가 일시적인 붐이나 품귀 현상 때문인지, 회사의 독보적인 경쟁력(호자) 때문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설비투자(CAPEX) 발표 순간이 고점일 수 있다: 기업이 대규모 공장 증설을 발표하고 완공될 때쯤에는 이미 시장의 수요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정비의 무서움: 공급을 늘렸을 때 수요가 유지되지 못하면, 새로 지은 공장의 고정비와 감가상각비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망가뜨리는 치명적인 독약이 됩니다.
단순히 과자 한 봉지의 품귀 대란으로 시작했던 허니버터칩 사건. 이는 오늘날 주식시장에서도 "기업이 설비투자를 늘릴 때 주주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타이밍이 언제인가"를 보여주는 대중 소비재 잔혹사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핵심 요약
2014년 출시된 해태제과 허니버터칩은 달콤한 감자칩이라는 파격으로 희귀템 신드롬을 일으키며 모기업 주가를 폭등시켰습니다.
150억 원을 들여 신규 공장을 증설했으나, 공장이 완공되어 대량 생산이 시작된 2016년 순간 희소성이 사라지며 거짓말처럼 유행이 식었습니다.
설비투자(CAPEX) 이후 수요가 꺾이면서 늘어난 고정비가 실적과 주가를 압박했고, 이는 주식시장에서 '피크 아웃(Peak-out)'과 대규모 투자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교훈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17편에서는 월가를 경악시킨 인버스(Inverse) 주식의 비화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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