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 그리고 단 한 주 가격만 수억 원에 달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패기 있는 거대 지주회사가 떠올라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수백조 원의 자산을 굴리는 이 금융 제국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뜻밖에도 '미국 동부의 사양 산업이었던 망해가던 방직 공장'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주식시장의 역사적 기업들을 분석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조차도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투자 실수'로 꼽는 기업이 바로 오늘날의 버크셔 해서웨이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망해가던 방직 공장이 세계 최고의 투자 회사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요? 그 드라마틱한 반전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감정적 투자가 가져온 2,000억 달러짜리 실수]
이야기는 1962년으로 올라갑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워런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이라는 투자 조합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 원칙에 따라, 청산 가치보다 훨씬 싸게 거래되는 기업을 찾아다녔습니다. 쉽게 말해 '담배꽁초 투자(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서 한 모금 무료로 빨아 들이는 식의 투자)'를 즐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버핏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버크셔 해서웨이'였습니다. New England 지역에 위치한 이 회사는 방직업의 불황으로 지속해서 공장을 폐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가진 순자산(기계, 재고, 현금 등)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터무니없이 싸게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버핏은 회사가 공장을 매각할 때마다 나오는 현금으로 자기 주식을 매수(자사주 매입)해 주가를 올려줄 것이라 계산하고 주식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장기 보유가 아니라, 주가가 적정 가치까지 오르면 적당한 시세 차익을 남기고 빠져나오는 '단기 매매'였습니다.
[12.5센트 때문에 벌어진 자존심 싸움]
그러나 1964년,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며 버핏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당시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자였던 시버리 스탠턴(Seabury Stanton)은 버핏을 찾아와 회사가 그의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구두로 약속한 매수 가격은 주당 11.50달러였습니다. 버핏은 이 정도 가격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익이라고 판단하여 서면으로 정식 제안서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도착한 공식 서면 제안서를 열어본 버핏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적혀 있던 가격은 약속했던 11.50달러가 아니라 11.375달러였기 때문입니다. 불과 12.5센트(약 160원)를 깎아서 제시한 것입니다.
스탠턴 경영진이 자신을 속였다고 느낀 버핏은 극도로 분노했습니다. 이성적인 가치투자가였던 버핏도 인간인 이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는 주식을 팔아 치우는 대신, 완전히 반대의 선택을 내렸습니다.
"내 주식을 팔기는커녕, 아예 이 회사 주식을 싹 쓸어 담아서 경영권을 빼앗은 뒤 스탠턴을 해고해 버리겠다!"
버핏은 시장에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맹렬하게 사들였고, 결국 1965년 회사의 지배 주주가 되어 시버리 스탠턴을 해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2.5센트에 대한 자존심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피봇: 방직 공장에서 금융 제국으로]
경영권을 쥐고 승리감을 느낀 것도 잠시,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막상 경영을 맡고 보니 미국 섬유 산업의 몰락은 도저히 개인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싸구려 해외 수입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고, 공장에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도 이익이 나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적 판단으로 쓰러져가는 건물에 수백만 달러의 자본이 묶여버린 것입니다. 버핏은 훗날 이 결정을 가리켜 "자신이 내린 1등 투자 실수였으며, 감정적인 오기가 없었다면 2,0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더 벌었을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명수는 실패한 판 위에서 판을 새로 짜는 법입니다. 버핏은 방직 사업에 계속 돈을 들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당장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방직 공장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현금을 긁어모아,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바로 '보험업'이었습니다.
1067년,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금으로 '내셔널 임뎀니티(National Indemnity)'라는 소형 보험사를 인수했습니다. 보험사는 고객들로부터 보험료를 미리 받아서 모아두는데, 이 돈을 '플로트(Float)'라고 부릅니다. 버핏은 이 대규모의 현금 유동성(플로트)을 바탕으로 코카콜라, 웰스파고, 엠파이어 가제트 등 유망하고 뛰어난 우량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양 산업이었던 방직 공장은 1985년 완전히 문을 닫았지만, 그 껍데기(기업 구조) 속에 담겨 있던 자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 배분 시스템으로 탈바꿈해 있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역사가 주는 교훈]
버크셔 해서웨이의 탄생 비화는 현대 투자자들에게 두 가지 명확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매몰 비용 오류와 감정적 투자의 위험성: 수많은 투자자가 자존심이나 오기, 혹은 '내가 여태껏 넣은 돈이 아까워서' 이미 틀린 투자처를 고집하다가 더 큰 손실을 봅니다. 버핏조차도 자존심 때문에 방직 공장에 수년을 얽매였습니다.
과감한 피봇(전환)의 중요성: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기존 사업이나 종목을 과감히 정돈하고 현금 흐름을 우량한 자산으로 이동시킨 역발상이 지금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만들었습니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는 완벽함이 아닙니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 자본을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재배치하는 능력이야말로 주식 시장에서 살아남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핵심 요약
버크셔 해서웨이는 원래 미국 동부의 사양 산업이었던 망해가던 방직 공장이었습니다.
워런 버핏은 경영진과의 12.5센트 매수 가격 시비로 분노하여 오기로 회사 경영권을 사들였습니다.
버핏은 방직업의 한계를 인정하고, 보험사 인수를 통해 확보한 현금(플로트)으로 우량주에 투자하는 금융 지주회사로 완벽히 전환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종이 서류와 고함이 난무하던 수동 거래소를 끝내고 전산 거래 시대를 연 ‘나스닥(NASDAQ) 탄생기: 종이 서류를 없애버린 전자거래의 혁명’을 다룹니다.
함께 생각해볼 댓글 질문 투자나 개인적인 삶에서, 버핏처럼 자신이 내린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고 빠르게 방향을 전환(피봇)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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