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이자 "밤에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마릴린 먼로가 "샤넬 No.5 몇 방울"이라고 답해 세기의 신화가 된 샤넬 No.5.
1921년 출시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와 우아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이 향수 뒤에는, 브랜드의 창업자인 코코 샤넬(Coco Chanel)과 투자자 간에 벌어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비열한 법적·경영권 전쟁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10% 지분의 덫: 코코 샤넬의 뼈아픈 실수]
1920년대 초, 패션 디자이너였던 코코 샤넬이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와 함께 만든 향수 No.5가 상류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그녀는 이 향수를 전 세계로 대량 생산 및 유통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샤넬에게는 대규모 공장을 세우고 유통망을 뚫을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1924년, 라파예트 백화점 창업자의 소개로 샤넬은 프랑스 최대의 화장품·향수 유통업자였던 부르주아 가문의 피에르 베르타이머(Pierre Wertheimer)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향수를 전문적으로 생산 및 판매할 '샤넬 향수 회사(Parfums Chanel)'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 지분 구조를 확인한 샤넬은 경악하게 됩니다.
베르타이머 형제 (자금 및 유통 제공): 지분 70%
라파예트 백화점 창업자 (중개 및 판매망): 지분 20%
코코 샤넬 (이름 및 레시피 제공): 지분 단 10%
막상 No.5 향수가 전 세계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자,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이 전체 이익의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코코 샤넬은 자신이 베르타이머 형제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며 지독한 복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재산 강탈 시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 비극적인 전쟁 상황은 코코 샤넬에게 베르타이머 형제에게 복수할 결정적인 기회로 보였습니다. 베르타이머 가문이 바로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치 고위 간부인 폰 딩클라게 남작과 연인 관계였던 코코 샤넬은, 나치 점령군이 유대인의 재산을 강제로 몰수하여 아리아인에게 넘기는 '아리아화(Aryanization)' 법안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나치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샤넬 향수 회사는 유대인이 소유한 회사이며, 그들은 독일의 적국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회사의 모든 권리와 지분을 원래 주인인 프랑스인(코코 샤넬)에게 돌려주십시오."
하지만 한발 앞서 미국으로 망명한 베르타이머 형제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기 직전, 샤넬 향수 회사의 지분을 유대인이 아닌 프랑스인 친우(크리스티앙 도르발)에게 위장 양도해 두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결국 샤넬의 나치를 이용한 지분 강탈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전쟁 후의 극적 합의: 영원한 상생으로]
전쟁이 끝난 후 코코 샤넬은 나치에 부역했다는 비난과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에서 쫓겨나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르타이머 가문은 냉정한 비즈니스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샤넬이라는 디자이너의 존재와 상징성 없이는 No.5 향수와 샤넬 패션의 가치가 오랫동안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54년, 피에르 베르타이머는 80세의 코코 샤넬에게 파격적인 합의안을 건넸습니다.
코코 샤넬이 요구하는 모든 수표와 세금, 품위 유지비를 평생 전액 지급
코코 샤넬의 패션 하우스 재기(파리 컬렉션 복귀) 자금을 완벽하게 지원
No.5 향수 매출에 대한 거액의 로열티를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대신, 브랜드 소유권을 완벽하게 베르타이머 가문으로 일원화
이 합의 덕분에 코코 샤넬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 리츠 호텔의 최상층 스위트룸에서 영왕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지원했던 베르타이머 가문 역시 오늘날 샤넬(Chanel) 제국을 100% 소유하며 세계적인 거부 가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핵심 요약
코코 샤넬은 대량 생산을 위해 베르타이머 형제와 손을 잡았으나, 지분 10%만 갖는 계약으로 인해 깊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재산 몰수 법안을 활용해 유대인인 베르타이머 가문의 지분을 강제로 빼앗으려 시도했습니다.
전쟁 후 베르타이머 형제는 샤넬의 평생 품위유지비와 패션 하우스 재기를 완벽 지원하는 조건으로 브랜드 소유권을 정리하며 극적인 상생을 이뤘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8편에서는 세계 10대 부자였으면서도 벼룩시장에서 옷을 사 입던 괴짜 창업자의 비화, ‘이케아(IKEA) 창업자 이케아 아저씨의 지독한 구두쇠 일화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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