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리즈 제1편] 석유 왕 록펠러: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가 돈을 번 상상초월의 방식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수많은 자산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통틀어 '가장 돈이 많았던 개인'은 누구였을까요?

수학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환산했을 때, 압도적인 1위로 꼽히는 인물은 바로 미국의 '석유 왕'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입니다. 그의 전성기 자산은 당시 미국 전체 GDP의 약 1.5~2%에 달했으며, 현대 가치로 환산하면 약 4,000억 달러(약 500조 원 이상)를 가볍게 넘어서는 수준이었습니다.

내가 록펠러의 비즈니스 역사를 탐구하며 가장惊탄했던 대목은, 그가 단순히 '석유를 시굴해서 대박이 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무질서했던 석유 산업을 철저한 시스템과 압도적인 독점으로 재편한 차가운 전략가였습니다.

[석유를 파내는 대신 '정제와 유통'을 지배하다]

1850년대 후반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 수많은 투기꾼은 땅을 파서 석유를 뽑아 올리는 '시굴'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록펠러는 달랐습니다. 땅을 파서 석유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순전히 운에 달렸지만, 나온 석유를 쓰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제(Refining)'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간파한 것입니다.

1870년,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설립했습니다. 회사 이름에 'Standard(표준)'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부터 비범했습니다. 당시 폭발 사고가 자주 나던 조악한 등유 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기름은 안전하고 표준화되어 있다"는 신뢰를 주기 위한 마케팅이었습니다.

[원가 절감의 마왕: 배럴 통의 세로줄 하나까지 줄이다]

록펠러는 지독할 정도로 원가 절감을 추구한 경영자였습니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록펠러가 석유를 담는 철제 캔의 봉인 공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작업자들은 납땜을 40방울씩 떨어뜨려 캔을 봉인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물었습니다.

"39방울로 봉인하면 기름이 새나요?"

실험 결과, 39방울로 납땜해도 기름은 전혀 새지 않았고 단 한 방울만 줄였을 뿐인데도 회사 전체로 보면 매년 수십만 달러의 비용이 절감되었습니다. 배럴 통을 만드는 나무를 직접 벌목하고, 배관망을 직접 설치하여 운송비를 철저하게 깎아내렸습니다.

[경쟁자를 말려 죽이는 잔혹한 독점 전략]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와 원가 절감으로 무장한 록펠러는 경쟁 석유 정제 업체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철도 회사들과 비밀 협약을 맺어 스탠더드 오일의 제품은 파격적으로 저렴한 운임으로 수송하고, 경쟁사의 제품에는 비싼 운임을 물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경쟁사 제품을 수송할 때 발생하는 철도 회사의 이익 일부를 스탠더드 오일이 챙기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경쟁업체가 견디지 못하고 파산 위기에 몰리면, 록펠러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그 회사를 인수해 버렸습니다. 제안을 거절하는 업체가 있으면 그 지역에만 기름값을 무료에 가깝게 덤핑하여 말려 죽인 뒤 인수했습니다.

결국 1880년대에 이르러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전체 석유 정제 및 유통의 90% 이상을 독점하는 공룡 기업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거의 모든 등유와 기름이 록펠러의 손을 거쳐 나간 것입니다.

[반트러스트법의 탄생과 독점 해체, 그리고 더 커진 부]

록펠러의 무자비한 독점은 결국 미국 사회의 거대한 반발을 불렀습니다. 1911년, 미국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이 경쟁을 저해하고 독점하고 있다고 판결하여 34개의 독립된 회사로 강제 분할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때 분할된 회사들이 훗날 엑손모빌, 셰브런 같은 세계적인 석유 거대 기업이 됩니다.)

기업이 쪼개졌으니 록펠러가 망했을까요? 천만에요.

독점기업 해체 조치로 분할된 34개 회사의 주식이 각각 상장되자, 석유 산업의 성장과 함께 이 회사들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34개 회사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고 있던 록펠러의 자산은 회사 분할 이후 오히려 몇 배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징벌적 해체 명령이 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부로 만들어준 아이러니였습니다.

[노년의 반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부왕으로]

젊은 시절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독점업자'라는 비난을 받던 록펠러는 50대에 건강이 크게 악화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는 9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하고, 록펠러 재단과 록펠러 의학연구소를 만들어 의학 발전과 페스트·황열병 퇴치 등에 거액을 기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현대 의학 발전의 상당 부분이 그의 기부금에서 출발했습니다.

록펠러의 삶은 무자비한 시장의 비즈니스 논리와 자본주의의 독점,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환원되는 자선 활동까지 자본주의가 가질 수 있는 양극단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렬한 상징이었습니다.

  • 핵심 요약

    1. 록펠러는 석유 시굴 대신 '정제와 유통'을 독점하고 지독한 원가 절감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2. 1911년 반트러스트법에 의해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해체되었으나, 주가 폭등으로 자산은 오히려 몇 배로 늘어났습니다.

    3. 노년에는 록펠러 재단을 통해 막대한 자산을 사회와 의학 발전에 기부하며 최고 기부왕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주고 주 5일제를 도입했지만 정작 노동조합은 철저히 탄압했던 자동차의 성인,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 주 5일제와 8시간 노동을 먼저 만든 진짜 이유’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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